출처: http://blog.empas.com/sonkissed/355729
논문 쓰기 (Part 2) - 논문 쓰는 첫걸음
나는 박사과정을 거의 7년이나 지냈다. 두 분의 담당 교수가 개인 사정으로 학교를 떠나면서 결국 세 번째 교수님과 일한 연구결과로 졸업을 하게 되었는데, 코넬 대학교 (Cornell University)에서 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분과 보냈던 3년 동안 가장 인상깊었던 점은 '연구하는 방법'이었다. 질문이 있어 가지고 가면 우선 하는 소리가 "B.K. Go back and think about it." 간혹 1주일 이상 고민 고민하다가 가서 하는 질문에도 그런 반응을 보일 때면 열이 받기도 했지만, 재미있는 사실은 다시 돌아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고민하다보면 아이디어가 조금씩 떠오른다는 것이었다. 어떨 때는 잠을 자다가 뭔가 번득이기도 하고, 길을 가다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하고, 성경을 읽던 중에 갑자기 오래 고민했던 문제의 실마리가 보여 메모를 하기도 했다. 그 당시에 나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학교 체육관에 가서 운동을 하며 머리를 식히곤 했는데, 내가 가장 좋은 아이디어를 많이 낸 장소는 다름 아닌 학교 체육관 안에 설치된 사우나였다. 사람이 어떤 한가지 일에 몰두하면 참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체험했던 시기였다.
논문 쓰기가 쉬운 일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연구한 자료를 조금씩 모아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결과를 어떻게 정리하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수개월의 연구결과를 학회(conference)위 논문 수록집(proceedings)에 싣고, 두 세 편의 학회논문을 엮어 저널에 싣는 방법도 있고, 능력이 된다면 처음부터 저널을 겨냥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지도교수의 역량과 학생의 노력이다. 때로는 지도교수가 자신의 전문분야가 아닌 쪽으로 새로운 연구를 추진하고자 학생을 받는 수가 있는데, 이런 경우에는 학생이 탁월하지 않으면 서로 고생한다.
저널에 논문을 출간한다면 대게 다음의 절차를 거친다.
(1) 출판을 원한다는 편지와 함께 논문을 editor-in-chief나 기타 지정된 사람에게 보낸다.
(2) 심사 결과를 받는다 (소요기간은 논문마다 차이가 크다)
논문 초고가 그대로 통과되는 경우는 드물다. 보통 수정이나 보충을 요구한다.
(3) 수정본을 보낸다.
(4) 논문 출간을 승낙한다는 편지가 오고, 저자는 최종본을 보낸다.
(5) 출판사에서 타이핑한 원고 (proof)가 오면 최종점검을 해서 보내는데, 이때는 오타를 점검할 수는 있지만, 내용을 바꾸지는 못한다. 가장 오타가 많은 부분은 수학 공식(公式)이다.
(6) 최종논문이 출간된다.
(7) 25~50부 정도의 무료 offprint가 저자에게 보내진다. 더 필요하면 저자 자신도 비싼 돈주고 사야한다.
학회에서 발표하는 논문 수록집의 출간은 절차가 훨씬 간단하다.
(1) 먼저 한 페이지 정도의 abstract를 보낸다. 함께 일하는 교수님이 그 분야의 권위자라면 심사 없이 accept이다. 학회에 대한 광고는 웹사이트나 학회지에 'Call for Papers'라는 광고와 함께 실린다.
(2) 정해진 기간까지 완성된 원고를 제출한다.
(3) 학회 장소에서 수록집이 배부되거나, 아니면 학회 기간 중에는 요약집만 나눠주고 이후에 논문집이 배달되기도 한다.
최근에 개발된 연구분야이거나 변화 속도가 빠른 분야라면 학회 논문집이 다른 분야의 저널 이상으로 평가받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저널이 아무래도 한 수 위이다. 그러나, 최근 연구결과를 신속히 접할 수 있는 학회논문의 장점을 살리면서 논문의 질을 올리기 위한 목적으로 학회 제출 논문의 심사를 처음부터 강화하거나 제출 논문 중 잘된 논문을 선별해 저널의 'special edition'으로 내는 경우도 자주 있어, 수개월 내에 유명 저널에 논문을 싣는 일도 가능하다.
연구의 업적이 논문으로 평가되는 만큼 논문을 많이 쓸 수 있다는 것은 학자로서 갖추어야하는 중요한 능력이다. 또한 연구를 활발히 할 수 있는 젊은 시절에 많은 연구결과를 산출하는 일도 연구자로서의 자질이다. 그러나, 때로 논문의 수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국내 학계의 현실을 보면서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 여야 할 교육의 중요부분인 연구활동이 너무 근시안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연구논문의 수를 채우기 위해 유사한 결과를 조금씩 바꾸어 이 저널, 저 저널에 싣는 일이나, 다른 사람의 결과를 이용하는 일은 물론, 전혀 그 논문에 공헌한 바가 없는 사람을 저자로 끼워주는 등의 일은 결과적으로 건전한 연구풍토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미국 생활을 오래하면서 엔지니어로서 부러운 것 중 하나는 학교나 연구소 기업을 막론하고 상당한 수의 노대가들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분야에서 수십 년을 연구해오며 독보적인 입지를 굳힐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연구여건, 기술자가 경영자와 동등한 입장에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풍토의 조성은 기술선진국을 목표로 하는 우리가 신중히 고려해 보아야할 사항이다. 능력 있는 인재들이 박사학위를 마칠 때 모아둔 자료와 지식으로 그 후 2~3년 간 논문을 쓰고는 잠적해버리는 국내의 연구풍토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논문의 숫자를 채우라는 식의 강압적인 접근 방법으로는 무리가 따른다. 첨단 기술 뿐 아니라 그 기술의 발전을 가져올 수 있는 기초과학 분야까지의 전 영역에 걸쳐 정부의 장기적인 계획 (정부가 바뀔 때마다 무효화되는 그런 계획이 아닌) 과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 또한, 기술의 산실인 대학교에서도 교수 한 명 당 연구소 하나가 필요한지, 또 한 명의 교수가 정년퇴임을 하면 그 연구실이 없어지고 신임교수가 새로이 연구소를 시작하는 식의 악순환을 되풀이 해야하는지를 자문(自問)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연구자 개개인도 자신의 논문이 자신의 얼굴이라는 자세로 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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